구리 한양대 병원에서
너의 할머니가 거의 8개월 가까이 입원해 계실 때,
졸업을 앞두고 실습을 나온 지방 (地方)대학 간호학과 학생들을 유심히 보았단다.
대개가 멀리서 실습차 온 학생들인지라
자비로 기숙하며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단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하는 회의와 함께
아빠 세대가 너희들에게 제대로 후한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한 미안함이 깊었단다.
아빠는 첫 직장이었던 한국화재보험협회 점검부서에 배치되면서
6개월 정도 연수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꽤 괜찮았던 수련기간이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구나.

졸업반인 네가 장안동 어느 피부관리샵으로 실습을 나가
아침 9시 반부터 저녁 10시나 11시까지 수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마음에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와 함께 분노가 치솟는구나,
너는,  '다 그렇지, 뭐'라고 해탈한 듯 얘기하니
그럼, 아빠에게 주어졌던 삶은 니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였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구나.
대체 아빠 세대가 너희들 세대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 잠시 생각하게 하는 저녁이구나.
그것이 사는 현실이라고 얘기하는 너와
그것이 반드시 옳은 삶은 아니라고 얘기하는 아빠의 시각 속에는
아주 슬픈 괴리감이 있는데
문제의식이 없어 보이는 너의 인식자체가 조금 슬프면서도
다행스럽게 여겨짐은 아빠만의 슬픔이어야할까?

노예처럼 살지도 모를,
니 자신을 그러한 수준으로 낮춰 살아 가야 할 너의 얘기들이
아빠로써는 많이 마음 아팠단다.
그러해선 안된다고 아빠는 생각해.
졸업여행조차 학교예산이 부족해 가지 못하는 너의 얘기를 듣자니
아빠는 더욱 뿔이 났단다.

희주야!
작고 적은 돈에 기죽지 않기를 아빠는 바래.
그것은 아빠가 절대 바라지 않는 모습이란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에 너의 자존심과 꿈을 내려놓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래.
세상은 그렇게 너희들을 길들이려 하지만
아빠는 절대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못하겠다.
너는 아빠의 딸이니까

.토마토.jpg

우리의 정원같은 텃밭 한 켠에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토마토를 보거라!
니가 밤늦게 감사히 얻어 먹는 자장면 한 그릇에 비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는.

고추.jpg

고추가 이제 우리들 입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구나.
희주야!
니 수고가 이렇게 빛난 맛으로 니 삶 속으로 들어왔으면 싶구나.

고추_2.jpg

토마토도 영글어 가는구나.
니가 이렇게 영글어 가는 모습으로 제대로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하지만 아빠의 미안함 너머로 홀연히 날아가는 너의 모습이 예쁘다.

중간 텃밭.jpg 

열무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까 하는 여백의 마음을 짓고 있을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니가 팍팍하니 생각하지 않을 내일을 위해
아빠는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어.
힘내! 
작은 돈에 절대 기죽지 말거라!
니 곁에는 아빠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