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 - 내 마음 네 마음

글수 114
젓갈 따위가 오래되어 푹 삭은 깊은 맛을 줄 때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곰삭다'라는 말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그러한 느낌은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자신의 열정과 혼을 바쳐 한길을 걸어온 결과물로써의 얘기는
제 어머니의 잔소리와는 또 다른 깊은 맛이 있습니다.
요즘은 제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
당신이 제게 전해주어야 할 유전적 삶의 지혜를 엿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거부감이 없지만 그것은 그렇습니다.
제가 읽었고,
어머니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인데
우리 시대의 시민사회와 의식을 이끌기도 하는 분들의 애절한 마음의 성과물이 담겨있어
이틀만에 그 책을 쉼없이 읽었습니다.
그 잡지사에서는 연초에 기획특집으로 그러한 강연회를 마련하고
저자 여섯 분이 주제별로 한 얘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었는데
사회자와 방청객의 질문이 그리 녹록하지 않아
더욱 긴박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책을 읽고는 제 상황인식과 의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무엇이 제 의식을 간섭하는지,
그리고 제 의식의 전경과 후경이 되는 그 시대적 인지도도 잠시 되돌아보았습니다.
사실 그 시대적 인지도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은
색안경을 낀 것처럼 다양할 수도 있는데
그 색안경을 쓴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의 환경과 조건이 그러한 눈을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우리가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색안경의 굴레입니다.
어제 김장김치와 겉절이를 갖고 오신 이웃의 어른과 신앙생활을 얘기하던 중에
저는 그 분과 함께 깊이 나누었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의 자제 가운데 한 분은 전도사로 바로 계곡가의 당신의 집에서 목회를 하는데
교회 건물이 없기 때문은 아닙니다.
10여 년 전 수동 비금리에 엄청 큰 물난리가 났었을 때
비금리 마을 뒷편 언덕 위에 있는 그 예쁜 교회에서는
계곡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었었습니다.
제 집 길 거너편의 어른도 그때 물에 휩쓸려가는 차를 빼내느라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그 이후 이런저런 방편을 거쳐 지금의 아름다운 비금리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아픔들을 나름으로 깊이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꽤 여럿입니다.
제가 비금리에 집을 짓고 이사 오기 바로 몇 개월 전에 지정된 정보화 마을이
저로써는 행복 그 자체였었는데
당시 이장이었던 분의 정보제공이 있어
3년 전 남양주시에서 뽑는 그 정보센터의 관리자에 응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6명의 시공무원과 마을 이장이었던 분이 면접을 보았었는데
저는 공무원들과 많은 말다툼을 벌였었습니다.
저를 면접한 공무원들은,
너는 건축기사 1급 자격증도 있고,
호주에서 비행기 조종교육도 받았는데
100만원 정도 주는 이 일을 왜 하려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저는 바로 제 집 앞에 직장이 있다면 그만한 일자리가 어디 있겠냐는 투로 맞받아치면서
그 정도 돈이면 저는 살 수 있다고 강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그 자리는 제 일자리가 되지 못하고
비금리 버스종점에 있는 슈퍼마켓의 아들이 군대가기 전 알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친구도 나름으로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군대를 가니 그 정보화 마을의 관리자로
저를 불러들이려는 얘기가 이전의 이장과 제가 싸웠던 이장에게 들어왔는데
그것을, 저는 하고 싶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할 수도 없는 것이 제 친구 회사에 제가 마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금리에서 그 일로 인해 외지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컴퓨터로 그들에게 새롭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겉절이를 가져오신 이웃 어른이 자신의 신앙관을 피력하다 보니
저도 제 신앙관을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저희처럼 그렇게 편협한 분이 아닐 것 같아요.
각기 다른 색깔의 교회와 사람들이 하나님과 인간 예수를 덧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한밤중에 희주와 함께 수동이 아닌 제 집 너머 가평군 현리로 장을 보러 갔었습니다.
수동면 하나로 마트와 현리에 있는 마트들의 거리가 거의 같습니다.
장을 볼 것은 사실 없었는데, 그저 순대와 오뎅이 먹고 싶어서 였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희주가 묻는 아빠의 종교관에 대해 나름으로 얘기하면서
떠오른 얘기였습니다.
희주에게 얘기하길,
'나이 들어 니 나름으로 깊이 생각할 때가 올터인데
주변에서 오는 잡스러운 개념들을 뭉쳐 지금의 네 생각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입니다.
희주에게 전화를 겁니다.
야! 아빠가 곱창이 먹고 싶은데,,,,,
'알았어!'
그 답변이 짧은 것을 보니 희주는 수업중이었나 봅니다.
오늘은 곱창볶음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으려라 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곰삭다'라는 말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그러한 느낌은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자신의 열정과 혼을 바쳐 한길을 걸어온 결과물로써의 얘기는
제 어머니의 잔소리와는 또 다른 깊은 맛이 있습니다.
요즘은 제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
당신이 제게 전해주어야 할 유전적 삶의 지혜를 엿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거부감이 없지만 그것은 그렇습니다.
제가 읽었고,
어머니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인데
우리 시대의 시민사회와 의식을 이끌기도 하는 분들의 애절한 마음의 성과물이 담겨있어
이틀만에 그 책을 쉼없이 읽었습니다.
그 잡지사에서는 연초에 기획특집으로 그러한 강연회를 마련하고
저자 여섯 분이 주제별로 한 얘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었는데
사회자와 방청객의 질문이 그리 녹록하지 않아
더욱 긴박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책을 읽고는 제 상황인식과 의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무엇이 제 의식을 간섭하는지,
그리고 제 의식의 전경과 후경이 되는 그 시대적 인지도도 잠시 되돌아보았습니다.
사실 그 시대적 인지도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은
색안경을 낀 것처럼 다양할 수도 있는데
그 색안경을 쓴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의 환경과 조건이 그러한 눈을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우리가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색안경의 굴레입니다.
어제 김장김치와 겉절이를 갖고 오신 이웃의 어른과 신앙생활을 얘기하던 중에
저는 그 분과 함께 깊이 나누었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의 자제 가운데 한 분은 전도사로 바로 계곡가의 당신의 집에서 목회를 하는데
교회 건물이 없기 때문은 아닙니다.
10여 년 전 수동 비금리에 엄청 큰 물난리가 났었을 때
비금리 마을 뒷편 언덕 위에 있는 그 예쁜 교회에서는
계곡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었었습니다.
제 집 길 거너편의 어른도 그때 물에 휩쓸려가는 차를 빼내느라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그 이후 이런저런 방편을 거쳐 지금의 아름다운 비금리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아픔들을 나름으로 깊이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꽤 여럿입니다.
제가 비금리에 집을 짓고 이사 오기 바로 몇 개월 전에 지정된 정보화 마을이
저로써는 행복 그 자체였었는데
당시 이장이었던 분의 정보제공이 있어
3년 전 남양주시에서 뽑는 그 정보센터의 관리자에 응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6명의 시공무원과 마을 이장이었던 분이 면접을 보았었는데
저는 공무원들과 많은 말다툼을 벌였었습니다.
저를 면접한 공무원들은,
너는 건축기사 1급 자격증도 있고,
호주에서 비행기 조종교육도 받았는데
100만원 정도 주는 이 일을 왜 하려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저는 바로 제 집 앞에 직장이 있다면 그만한 일자리가 어디 있겠냐는 투로 맞받아치면서
그 정도 돈이면 저는 살 수 있다고 강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그 자리는 제 일자리가 되지 못하고
비금리 버스종점에 있는 슈퍼마켓의 아들이 군대가기 전 알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친구도 나름으로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군대를 가니 그 정보화 마을의 관리자로
저를 불러들이려는 얘기가 이전의 이장과 제가 싸웠던 이장에게 들어왔는데
그것을, 저는 하고 싶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할 수도 없는 것이 제 친구 회사에 제가 마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금리에서 그 일로 인해 외지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컴퓨터로 그들에게 새롭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겉절이를 가져오신 이웃 어른이 자신의 신앙관을 피력하다 보니
저도 제 신앙관을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저희처럼 그렇게 편협한 분이 아닐 것 같아요.
각기 다른 색깔의 교회와 사람들이 하나님과 인간 예수를 덧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한밤중에 희주와 함께 수동이 아닌 제 집 너머 가평군 현리로 장을 보러 갔었습니다.
수동면 하나로 마트와 현리에 있는 마트들의 거리가 거의 같습니다.
장을 볼 것은 사실 없었는데, 그저 순대와 오뎅이 먹고 싶어서 였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희주가 묻는 아빠의 종교관에 대해 나름으로 얘기하면서
떠오른 얘기였습니다.
희주에게 얘기하길,
'나이 들어 니 나름으로 깊이 생각할 때가 올터인데
주변에서 오는 잡스러운 개념들을 뭉쳐 지금의 네 생각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입니다.
희주에게 전화를 겁니다.
야! 아빠가 곱창이 먹고 싶은데,,,,,
'알았어!'
그 답변이 짧은 것을 보니 희주는 수업중이었나 봅니다.
오늘은 곱창볶음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으려라 봅니다.
2009.11.12 10:07:58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가세해 낙엽이 뒹구는 스산한 거리를 걷자면
저도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 따뜻한 차라도 한잔 나누면서
털털하니 즐겁게 사는 친구의 자기 자랑에 가까운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도 세상살이의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방편이 될 듯 싶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저를 쪼기 좋아하는 곰삭은 친구라도 함께 한다면
그 찔림을 달게 받기 좋은 날씨가 요 며칠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절이 을씨년스러우니
정말이지 저 역시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친구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열쇠 구멍이나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보지 않아도 될 그러한 친구들......
바깥에 아침에 내놓은 건조대가 그새 바람에 쓰러졌습니다.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예고편이 징하기만 합니다.
오늘 같은 날, 제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저는 순대국밥이나 보신탕 특--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예수일텐데요.
이번 주가 추수감사절이지요?
지난 주에 오셨던 전도사분이 그리 얘기해주어 알았습니다.
마침 집에 쌀도 떨어져가는지라 20kg짜리 두 포대를 사서는
어제 저녁 교회 주방에 한 포대 두고 왔습니다.
제 텃밭에서 이즈음 거둘 것이 없어 그리했습니다.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그때 한번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수능도 끝나면 정형도 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람까지 가세해 낙엽이 뒹구는 스산한 거리를 걷자면
저도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 따뜻한 차라도 한잔 나누면서
털털하니 즐겁게 사는 친구의 자기 자랑에 가까운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도 세상살이의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방편이 될 듯 싶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저를 쪼기 좋아하는 곰삭은 친구라도 함께 한다면
그 찔림을 달게 받기 좋은 날씨가 요 며칠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절이 을씨년스러우니
정말이지 저 역시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친구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열쇠 구멍이나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보지 않아도 될 그러한 친구들......
바깥에 아침에 내놓은 건조대가 그새 바람에 쓰러졌습니다.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예고편이 징하기만 합니다.
오늘 같은 날, 제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저는 순대국밥이나 보신탕 특--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예수일텐데요.
이번 주가 추수감사절이지요?
지난 주에 오셨던 전도사분이 그리 얘기해주어 알았습니다.
마침 집에 쌀도 떨어져가는지라 20kg짜리 두 포대를 사서는
어제 저녁 교회 주방에 한 포대 두고 왔습니다.
제 텃밭에서 이즈음 거둘 것이 없어 그리했습니다.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그때 한번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수능도 끝나면 정형도 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와이셔츠 위에 쉐타 하나를 걸쳤습니다.
단추구멍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 오는 것 같아 한 겹 껴입는다는 것이 고작 얇은 쉐타입니다.
가로수 사잇길의 낙엽은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사정없이 휩쓸어 갑니다.
문득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바닥을 구르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다 봅니다.
언젠가는 그 처럼 휩쓸리는 낙엽이 되어 고령자 처치 더미에 몸을 웅크린채 저 세상을 바라 보겠지요.
눈꺼풀을 들고 있을 힘조차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언제 보아도 친근한 곰삭은 친구가 필요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