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 - 살아가는 이야기

글수 229
간밤에 지붕으로부터 울려오는 센 빗소리를 좀 줄여볼까 싶어
누에고치처럼 이불 속으로 온몸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이미 바깥의 빗소리에 가닿은 신경을 제자리로 불러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내린 그 비는 정말 이즈음 꼭 필요한 단비였는데
뜰과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많은 생명들에게는 생명수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자
팍팍해진 마음의 주름을 펴주려는 그네들의 초대일지도 모르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데크 난간 위의 이빨 빠진 빈 커피잔에 빗물이 넘친 것을 보면
밤새 80 mm 정도의 비가 내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보슬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는데 아침 공기가 촉촉한 것이 참 좋습니다.
산기슭 곳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안개는 비구름의 위세에 눌려서인지
제자리에 멈춰서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커피 한 잔을 타들고 어머니 방으로 향합니다.
창문의 커튼을 열고 전동 침대의 등받이를 올리니
비구름과 안개에 뒤덮인 서리산을 내다보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촉촉히 펴지는 듯 싶습니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커다란 들통에서 푹 고운 사골을 들여다보니
체 굳지 않은 황금빛 기름이 보입니다.
얼추 기름을 걷어내고 김치 냉장고용 보관용기에 옮겨 담아 김치 냉장고 안에 넣어둡니다.
6시간씩 두 번 고운 것이 그 용기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며칠은 국이나 찌개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다시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의 불을 켭니다.
이제부터는 육수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골 국물을 얻기 위함입니다.
밥을 새로 지어 아침에 먹을 것만 남기고는
동원 참치죽 빈 용기에 담아 냉동고 안에서 급히 동결시킵니다.
이러면 햇반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제게는 비상용 밥이 됩니다.
오늘 아침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데워 마저 먹어야겠습니다.
단비가 오니 아침 마음이 편합니다.
도로변 터에는 작년 이맘때 현리에 주둔하고 있는 맹호부대에서 구축한 진지가 하나 있는데
오늘 점심경부터, 훈련중인 맹호부대 병사들이 와있는 모습이 거실 창밖으로 내다 보입니다.
집 주변 산속에는 매복용 진지를 구축하고 경계근무중인 병사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랑비를 맞으며 훈련중인 병사들이 전방 철책근무중인 쌍둥이 조카를 떠오르게 합니다.
커다란 주전자에 뜨겁게 끓인 커피와 종이컵을 내주면서
도로를 오가는 지휘및 감독 차량은 없는지 열심히 살폈습니다.^^*
"우중에 수고가 많다.
따뜻한 커피 한 잔씩 들거라."
비가 오는 날,
그네들이 커피 한 잔과 함께 피우는 담배 맛은 어떠했을까?
30년 전, 1사단에서 복무했던 시간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오릅니다.
80년 광주사태가 일어나고
그 며칠 후인 6월 3일 의정부의 모 보충대를 거쳐 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8주 동안 신병훈련교육을 받았었는데
전방 군인들이 죄다 제 정신이 아닌 듯 싶을 정도의 긴장상태였었습니다.
저는 키가 워낙 커서 눈에 가장 많이 띄다보니 얼차려를 많이 받았겠거니 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 환경에서는 좀 얼치기처럼 보였겠구나, 하는 느낌은 갖고 있습니다.
그 사단은 전두환 장군이 여전히 지휘하고 있던 부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오늘이 5.18인 것도 또한 잘 몰랐습니다.
제가 유격훈련을 받던 곳에는 철조망에 갇혀있던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그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 온 사람들인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었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생성을 되풀이하는데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추모하게 됩니다, 이 부슬비와 함께.
그분들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짙은 비구름과 안개에 서리산이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높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부담스럽습니다.
저리 가려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지들이 믿는 믿음대로 가려는 마음만은 저지하고 싶습니다.
제게 풍만한 봄이 왔었습니다.
제 손길과 마음이 가닿은 그 모습을 기억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