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쏟아진 폭설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읽으며 수요일 일찌기,
제 차를 모시고(?) 수동천변 지방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구리 한양대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의 주치의인 교수님을 뵙고 그간의 상황 변화를 말씀드리니
어머니가 아침과 저녁으로 드시는 알약들 가운데 한 알을 빼십니다.

"그 약을 너무 오래 먹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는데
 다음 외래때 머리에 물이 찼는지 CT 한번 찍어봅시다."

어머니의 기억지속시간을 주제로 그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치매에 대한 진행 증상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우기 제 어머니는 두 번의 뇌수술과 그후 이어진 수두증 수술시 머리에 작은 펌프를 심으셨으니
그 분의 CT촬영 제안은 제게는 충분히 납득이 되었습니다.

빙판길을 운전하느라 뒤늦은 점심을 마석에서 해결하고는 
길게 자란 머리를 미용실에서 깍을 즈음 어느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충무 집사가 돌아가셨대!"

"네?,!"
......
......
......

어제는 희주가 쉬는 날인지라 희주에게 어머니 뒤처리를 맡기고는
오전 일찍 냉큼 수동농협 하나로마트로 장을 보러갔습니다.
양파, 대파, 콩나물, 두부, 달걀 한 판, 미향, 미역, 식초, 올리고당, 유부, 그리고 돼지등뼈 3kg을
제가 좋아하는 서울 월매 막걸리 5병과 함께 사왔습니다.
막걸리 가격이 병당 1,800원이었는데 이는 작년 말에 비해 300원이나 오른 가격입니다.
부동산이나 사교육에 대한 과잉 투기와 투자심리처럼
막걸리 가격에도 막걸리 열풍의 지대한 영향이 반영된 듯 싶은데
내내 조용히 음용하던 애주가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가격 인상이었습니다.

그날, 수동 청룡마을 앞에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태우고는
함께 농협 마트에 가게 되었는데
도착하는 내내 제게 고마움을 표하며 예수를 믿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예. 저는 수동 초대교회에 다녀요."

"그렇지, 믿는 사람은 달라도 달라.
내가 그렇게 손을 흔들어도 세워주는 차가 없었어."

할머니에게,
이 길을 오가는 운전자들이 모나고 인색한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서로에게 불편한 처리과정이 있어 지레 피하느라고
할머니를 태우지 않는 거예요, 라고 말씀드리니 이해를 못하십니다.^^*

그 할머니의 처지가 나름 다가와
믿음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얘기할 수 없었는데,
지난 주 목요일인가요?,
이충무 집사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목사 내외와 전도사 그리고 장로님이 제 집에 들르셨는데
다과를 대접하면서 가벼이 대화하는 가운데 장로님의 그 송곳같은 찌름성 희망이 그날도 되풀이 되었었습니다.
그 분의 바람은 그저 제가 교회에 출석하게 해달라는 예의 그 소박한 희망일 뿐인데
그날 제 마음은 그리 편치않았습니다.
그 전날 이미 어느 분을 통해 그 분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불편한 심기가 이러한 표현으로 다수의 앞에서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어머니께는 제가 살아있는 예수고,
저는 제 마음에 교회가 있습니다."

서로 씁쓸한 당황......

그날 밤 늦게, 어머니에게 늘상 있는 뒤처리를 하고는
알바를 마치고 들어오는 희주를 마석에서 만나 함께 그 어른께 문상을 드렸습니다.
너무 당황했던지라 저는 마지막 절까지 반배가 아닌 완배를 해버리고 말았네요.^^*

그 장례식장에서 저는 잠시 혼란스러웠는데
돌아가신 분의 성함이 제가 익히 알던 이름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주의 이름을 아는지라 긴가민가하며 찾아간 그 장례식장의 방이
제가 찾던 그 분의 방임을 알았는데
쩌렁쩌렁 소리 지르며 살다간 그 분의 목소리와 함께
너무 지 기분대로 아프게 살다  작게 사라져버린 그 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