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서리산과 서쪽 주금산이 가을빛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그 사이에 갇힌 비금리의 낮이 엄청 짧아졌습니다.
꼭 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저녁을 해먹는 시각도 그리 일러졌습니다.
저녁 식사 후의 뒤처리를 늘 하던대로 처리하고
데크에 나가 보니 자작자작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제 터를 지나가는 가을의 발걸음이 잰 걸음이 될 듯 싶습니다.

부추 장떡과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할 즈음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손녀 현정이의 결혼 청첩장을 보낼 제 집 주소를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예식장으로 사용할 마석 근처의 교회를 이미 알고 있으니
번잡하게 따로 보내시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는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현정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할아버지인 장로와 권사인 할머니 손에 안겨 자랐다는 얘기를 주변분들로 부터 들었었는데
왠지 희주에 대한 마음이 겹쳐지면서 멀리서나마 관심을 두게 되었었습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4년여 전 수동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다녔던 초대교회에서 였는데
그 때는 어느 교회의 점심이 맛있는지가 제게는 아주 중요한 평가 항목이었기 때문에
저는 야외에서 먹는 그 교회의 점심식사 풍경과 아낌없이 주는 점심 맛에 반해
한동안은 그에 대한 감사함을, 제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것으로 대신할 정도였습니다.
현정이는 그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저는 간혹, 그네의 반주와 찬양이 좋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 박수는 현정이를 예쁘고 곱게 키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내는 박수이자
어려움을 스스로 꿋꿋이 극복해낸 현정이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했습니다.

현정이를 위해 저와 가족들은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며칠 전부터 그 선물 안에 담을 편지 내용이 제게는 하나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희주가 학교에서 방금 돌아왔습니다.
노트북을 인계해야 할 시간이 된겁니다.
"다 했어?"
희주가 재차 묻습니다.
제가 희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현정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노트북을 희주에게 건내주어야겠지요?

자작자작 내리는 가을비가
마음에 흠뻑 젖어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