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밤, 어리굴젓, 말린 대추, 꿀고구마, 풋고추, 파프리카 등을 챙기고 있습니다.
희주가 선물로 받은 황태채와 잣도 나누어 줄까?

누이들이 수동으로 부터 기다리는 가을 선물은 사실 가자미 식해인데
그건 텃밭의 무가 아직 덜 자라서 최소 20일 후에나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도 어느 정도 삭혀진 맛으로 배달되려면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비로서 수동의 제 삶은 본격적인 짠돌이 겨울 모드로 바뀔 겁니다.
하여튼 올해 제가 텃밭에서 수확해서 계절 별미로 만든 것이나 만들 것들은 가족들에게 조만간 전달될 겁니다.

어제는 내년 3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LPG 가스 통 2개를 모두 교체하고
3드럼 용량의 보일러용 등유 기름통도 확인해 보니 12월 중순까지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심야전기를 사용하는 축열식 온풍기가 있어 저는 기름을 적게 사용하는 편입니다.
동절기 내복 3벌도 택배로 방금 도착했습니다^^*
주요 부위가 헤어질 때까지 몇 년 동안 지 몫을 다한 내복을 버릴 때에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요즘은 제 삶을 지탱해 주는 물건들이 단순히 물건으로만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스스로를 소멸해 가는 물건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가장 불편해 했던 것은 
작은 화면 하단에 뜨는 조막만한 천쪼가리 같은 키패드였었는데
그도 음성 명령어로 대체되면서 그 불편이 상당히 감소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스마트폰에 엄청 진화된 AI(인공지능)능력이 부여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통신기기로만 보기도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 스마트폰 끼리만 사는 세상이 올 것도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제네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들 지적 수준이나 판단력 훨 아래인 화학물질 생명체로 여기지 않을까?
인간보다 더 나은 수준의 감성이나 도덕과 윤리성을 갖추게 된다면?

인간다움의 정의가 너무도 복잡한 개념으로 빠져들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하여튼 저도 소멸해 가는 물건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이 60에 불현듯 인식된 상황입니다.

제가 사용하다 버리는 물건들에도 어떤 생명성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소비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생명들을 쉬 갈아치우며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새 내복을 껴입으면서 두서없이 다가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