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하루,
1층 13개 유리창을 봄맞이를 하면서 닦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데크에 면한 파티오 도어 2곳은 여느 창문처럼 닦았는데
데크 중심부에 위치한 현관 출입문과 그 공간은 청소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무엇 때문에 안한 건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여튼 희주를 출근시키고 돌아와 바로 즉시 제 마음에 들도록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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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여 전, 오이 소박이를 담그려다 주재료인 부추를 장바구니에 담지 않아 그냥 오이지를 담갔었는데
간간하니 잘 만들어져 그 가운데 다섯 개로 냉국과 무침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청양고추의 매운 향이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는 오이지 냉국이 좋던데 
희주는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지 무침이 좋은지 요즘은 그들만으로도 둘 다 밥을 잘 먹고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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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닥친 장마 전의 폭염에 실내 온도가 29도까지 치솟아 부랴부랴 토종닭 한 마리를 사다, 
고흥에서 누이가 보내준 마늘과
지난 가을에 따다 얼추 건조시켜 냉동고에 넣어둔 대추와 은행도 아낌없이 넣고, 
며칠 전 세일할 때 어느 온라인 마트에서 산 수삼 또한 넉넉히 담가 푹 삶아서는 
제대로 된 백숙을 만들었는데, 여동생이 준 누룽지로 닭죽도 만들었더니
희주는 이틀내내 끼니마다 누룽지 닭죽과 오이지 무침만 찾아 먹었습니다.

지난 한 달 이상 수동 비금리에는 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텃밭 작물에 식수를 공급한 것은 딱 한 차례입니다.
그도 멀칭비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 마음은 텃밭에 심은 작물들의 아우성에 쉬 지쳐버렸을 겁니다.
그리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텃밭을 배회하며 잡풀들을 제때 솎아낸 것이 그네들의 목마름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겁니다.

이웃 터와의 경계에 쌓은 석축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도 올해는 시시때때로 고지가위를 이용해
제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고도, 견딜만한 짜증만으로 통제할 수 있어 그나마 스트레스가 훨 줄어들었습니다.
제들은 기생식물처럼 지 몸통에 해당하는 줄기가 석축이나 어느 나무 기둥과 관목 가지에 의지해야만 사는 애들이기 때문에
그저 땅값만 확인하고 전혀 돌보지 않는 그 터의 주인들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어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지 땅을 저리 돌보지 않는 그 염치없음에 저는 간혹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러한 복잡다단한 관계와 상황 속의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지 시선으로 그리 보고 그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그리 얘기하는 사람들이 칡넝쿨과 너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서 긍정의 노예가 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실 남들이 어렵게 쟁취한 과실을 그저 얻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칡넝쿨처럼 남의 건강한 삶에 기대어 비비꼬아가며 그 삶을 해치며 살아가는 존재들......

며칠 전 천창의 비가 새는 부위를 실리콘으로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강풍에 들이치는 비도 아니고 조용히 내리는 첫날의 장맛비에 빗방울이 1분에 네 방울씩 똑똑 떨어집니다.
함지박을 대어 빗방울을 받아내고 이 비가 그치면 일단 비닐하우스용 비닐로 천창 부위를 가리고
장마가 그치면 다시 손을 봐야겠습니다.
눈가리고 야옹식으로 그 천창의 누수 부위를 수선해서 그렇습니다.
수명이 다한 실리콘을 걷어내고 밑바탕 처리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그냥 귀찮아서 덧씌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여튼 요행의 기대는 댓가가 있게 되어있습니다.
아직 제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어제 저녁에는 상추를 듬뿍 뜯고,
오늘 아침에는 우산을 쓰고 아래 마당 텃밭에 내려가 첫고추를 땄고
강된장을 만들어 호주산 소고기 갈빗살을 구워 희주의 아침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아침에 내리는 장맛비가 선의와 악의가 딱 균형점을 찾아가는 느낌을 주어
저는 나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 속은 청양 고추를 읏깨어 쳐바른 것 처럼 좀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