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 전에 수동 비금리에는 하루 온종일 100여 mm의 비가 내렸는데
아래 마당 매발톱꽃 화단의 단풍나무와 데크 밑 단풍나무 세 그루는
비의 무게를 털어내지 못하고 하루 종일 기우뚱하니 고개를 숙이고만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찌기, 
어느 단풍나무는 신발끈을 풀어 데크 난간 기둥에 묶어
그 허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줄여주었고
어느 단풍나무는 D10 철근 두 개를 조경석 틈새에 박아
연약한 허리를 지탱하게 하였습니다.
낡은 호스를 잘라 단풍나무 허리를 받치고는 두 끝을 각각의 철근에 끼워 넣었더니
저도 사용하는 허리보호대를 두른  것 같았습니다.
올 여름 강풍에도 견딜만큼 튼튼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수돗가의 헛개나무,
개집 옆 천도 복숭아 나무
컨테이너 옆 포도 나무가 지난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저와의 인연을 마쳤습니다.
힘들었었나 봅니다.

가장 늦게 봄맞이를 하는 집 주변 밤나무에도 물씬 봄물이 오른 것이 느껴지는데
한낮에도 계곡을 질주하는 물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면 비가 많이 오긴 온 모양입니다..

냉면과 엄니.jpg 

저녁입니다.
어머니가 불현듯 제게 국수를 주문하십니다.

"쫄면 해먹을까?"

"쫄면은 싫다."

"그럼 냉면?"

"그것 좋지"

아마 밥이 질리셨던 모양입니다.
하긴 한낮에는 좀 덥기도 했으니......

냉장고에서 녹차냉면 사리, 냉면 육수, 그리고 어제 만들어 먹고 남은 생오이 무침을 꺼내
냉면 만들기에 들어갑니다.
삶은 달걀을 더하니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다음에는 육수를 좀 살짝 얼리면 더 맛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늘 하는 농을 던집니다.

"엄마, 이제 맛있게 먹었으니 뒷산 가자!"

"아니, 이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너무 이르지 않니?"

이런 멋진 어머니의 응답을 대할 때마다,
저는 으레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싫지않은 표정을 즐겁게 만듭니다.

사실 제가 어머니께 뒷산에 가자는 얘기는
그만 죽으러 가자는 얘기를 애둘러 표현하는 장난기 섞인 말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진심일 때가 있기도 있었습니다.

뭐, 이럴 때가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일상은 거의 휠체어와 전동침대에서 이루어집니다.
네 시간마다 갈아야 하는 기저귀를 간혹 당신의 작은 욕심때문에 미루게 할 때가 있습니다.
TV 드라마를 보는 중에 이 일을 할라칠 때가 그러한 경우의 하나이고,
아침 식사 후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것이 귀찮아
짐짓 제게, 배변의 느낌이 없다며 회피를 할 때가 그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전에는 어머니 의사를 존중해드렸다가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자주 있어
지금은 거의 당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가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해나가는데
그러다 보니 작은 실랑이를 벌일 때가 있고
그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느닷없이 돌아가신 둘째 외삼촌과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찾기도 하는데
이쯤되면 제 속이 확 뒤집어지면서, 내뱉던 말이 '엄마, 뒷산 가자!'입니다.
어머니의 기억 속 집착대상은 주로 그 두 사람이고 현실에서는 희주로 나타납니다.

다음에 이어서 써야겠습니다.

0524/AM 0807

어제는 하루 종일 세찬 비바람에 비금리 산야의 초목들이 엄청 시달렸습니다.
비는 그리 많은 양이 내리지는 않았는데
바람은 거의 우라질레이션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 매몰찬 바람에 데크 위에 널브러진 참나무와 밤나무의 연녹색 잎사귀를
빗자루로 쓸어낼 정도였습니다.
참나무와 밤나무 가지 여기저기 축 처져 매달린 잎새들이 보입니다.
모두들, 다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텃밭의 작물들은 지주 덕분에 밤새 무사했습니다.^^*

크고 작은 기쁨을 가져다 주는 여러 풀꽃과 나무들 그리고 텃밭의 다양한 작물들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그나마 간혹 불쑥불쑥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화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들여다 봅니다.
용서란 것이 타인을 향한 것이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지난 몇 달 동안 계속 하고 부침을 계속했던 것 같은데
이즈음 제게 필요한 것이 나를 용서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운 양념장과 파인애플에 재운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은 후
먹고 남은 두부 반 모를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서는
계란찜과 함께 어머니께 아침 식사로 내놓으니 맛있게 드십니다.

바람이 숨을 죽이고 산야의 초목들이 기지개를 켜는 안개 짙은 이 아침이 평안합니다.